고된 수능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나에게 묘할 만큼 고요함 그 잡채였어. 시험을 잘 본 애들은 이미 들떠서 신나있었고, 아닌 사람들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아무 말을 못했지. 나는 후자에 해당되었어. 채점을 하기도 전에 이 생각이 들었어. “아, 이건 아닌데...”
결과를 확인하고 나니 그 생각은 더 피부에 와닿았어. 기대했던 점수랑은 거리가 멀었고, 그동안의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어. 주변에서는 눈높이를 낮추어 대학에 진학하기를 권했어. 사실 그게 현실적인 선택지니까.
근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너무도 억울하단 생각이 들더라. 피나게 노력한 열정에 비해 결과가 너무 허무해서 오기가 생겼어. 지금 떠올려보면 근거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때는 그냥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다른 길을 택했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말야. 직업도 안정적이고 처참한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바보같은(?) 선택을 한거지.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어.
돌아가는 길에서 깨달은 하나
처음 1년은 말 그대로 ‘열심히만’ 했던 거 같아. 계획을 빡빡하게 세우고, 시간을 떼우고, 최대한 많이 보는 것. 결과는 아주 가볍게 탈락. 그래도 그때는 “처음이니까”라고 넘겼어. 두 번째 시험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 쪼금 더 오래 앉아 있었고, 조금 더 많이 봤을 뿐이었지. 그리고 결과는 또 탈락. 이쯤 될때 슬슬 짜증이 올라왔어. “이거 계속 해도 되?”
세 번째까지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라. 이건 부질없는 오기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 그때 처음으로 모든 걸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어. 욕심만 가득차서 넘 많이 하려고만 했었고,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지 않은거야.
그래서 그때부턴 방식을 바꾸었지. 여러 과목을 동시에 건드리는 짓을 멈추고, 한 과목을 한 단원으로 쪼개서 하나씩 집중하기 시작했어. 글구 나만의 기준을 하나 세웠어. “이 단원은 안보고 설명 못 하면 모르는 거야.”
사실 이거 하나로 결과는 완젼히 달라지게 되었어. 애매하게 떠오르는 내용들이 점차 사라라져갔고,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은 선명하게 뇌리에 챡챡 박히게 되었지. 처음에는 속도가 너무 더뎌서 이거 될까 이런 생각도 들었어. 남들은 진도를 쭉쭉 나가는데, 나는 한 부분에서 계속 멈춰 있으니까.
근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방식 완죤 소름돋는단 생각이 들더라. 이미 봤던 내용을 다시 공부할 필요도 없었구, 머릿속에 구조가 잡히기 시작했어. 예전엔 한 번 보고는 잊어버려서 계속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다시 돌아보지 않아도 기억이 생생한 느낌?!
결과는 결국 내 편에 서게 되었어. 처음으로 시험을 통과하게 된 거야. 진짜 그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아, 이게 되는구나”라는 감동이었어.
지금 돌이켜보면, 수능을 망친 건 사실이었고 선택도 완벽하지 않은 것도 맞는 말이야.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도 맞아.
허나 결과를 바꾼 건 그 선택이 아닌 ‘방식’이었어. 같은 시간이여도 어떻게 쓰느냐가 완전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는 거를, 그때 처음 깨달을 수 있었어.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마 같은 선택을 하진 않겠지. 하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해. 어떤 길을 가든, 방식이 틀리면 같은 걸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걸. 결국 중요한 건 어디로 가느냐보다, 어떻게 가느냐인 거 같아. 이건 직접 한 번 겪어보면 아마 놀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