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무 똥꾸녕 왜 나는 미리 관리하지 않았을까

지나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 있다. “왜 나는 미리 관리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꼈다. 조금 불편한 정도였고, 그냥 참고 넘기면 될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그 사소했던 신호들이 쌓여서 결국 나를 제대로 괴롭히게 될 줄은 그땐 몰랐다. 근데 사실 주변만 돌아보아도 몸에 이상이 생기고나서야 먼가 잘못됐구나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구나 이생각하는게 사실 좀 보통이긴 한것같다. 왜냐? 우리 모두 바쁜 사람들이지 않은가 우리 한가한 사람들 아니지 않나.
그땐 괜찮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늘 비슷하다. 조금 가렵고, 약간 따끔하고, 뭔가 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 정도는 다 있지” 하고 넘긴다. 나도 그랬다. 바쁘기도 했고, 굳이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근데 그게 문제였다.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은 척했던 거였다.
귀찮음이 만든 선택
사실 알고는 있었다. 이거 그냥 두면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거. 근데 병원 가기 귀찮고, 괜히 민망하고, 시간도 아깝고… 이런 이유들로 계속 미뤘다. 대신 약국에서 약 사 먹고, 대충 해결하려고 했다. 사실 약국가서도 항문 아파요 응꼬 아파요 이런말 하기에는 특히 약사가 이성이라면 더더욱 이런 말을 하는 거 존나 민망하고 쪽팔려서 약국마다 차타고 돌아다니며 약사님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둘러보기까지 해봤다. 그나마 동성의 약사님이 좀 더 얘기하기에는 편하기는 하더라. 그래서 겨우 찾아서 치센 주세요 요럴 때 바르는 연고주세요 이런 식으로 어찌저찌해서 약을 구해서 먹고 발라보기도 해봤다.
“지금의 귀찮음이 나중의 고생이 된다.”
그때는 이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나중에 몸으로 겪고 나니까 이해가 되더라.
몸은 이미 계속 말하고 있었다
가려움이 잦아지고, 따끔함이 길어지고, 불편함이 점점 커졌는데도 나는 계속 무시했다. 몸은 분명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듣지 않았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던 거다.
- “좀 쉬면 괜찮아지겠지”
- “오늘만 이럴 거야”
- “시간 지나면 없어지겠지”
이런 생각들로 계속 넘겼다. 결과는 뻔했다.

한 번 불편해지니까 모든 게 달라졌다
그때부터였다. 앉는 것도 불편하고, 걷는 것도 신경 쓰이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상 자체가 흐트러졌다. 그제서야 “아, 이거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답은 간단했다. 오래 앉아 있는 생활, 물 부족, 커피 과다, 불규칙한 배변. 다 알고 있던 것들이었다. 근데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반복했다. 결국 그게 쌓여서 터진 거였다.
지금이라도 바뀌면 다행이다
솔직히 완전히 안 할 수는 없다. 커피도 마셔야 하고, 앉아서 일도 해야 한다. 근데 이제는 안다. ‘적당한 선’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무조건 끊는 게 아니라, 내 몸이 버틸 수 있는 범위를 지키는 거.
지금 생각하면 단순하다. 그때 조금만 신경 썼으면 이렇게까지 안 왔을 거다. 그래서 더 아쉽다.
그래서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왜 나는 미리 관리하지 않았을까… 이 후회, 한 번 시작되면 계속 남는다. 그러니까 아직 괜찮을 때, 그때가 진짜 타이밍이다.